내 다 안다,사람들이 돌아오는 동네마다 저녁이 다녀갔음을,나이 백 살 되는 논길에 천살의 저녁이 다녀갔음을,
오소리 너구리 털을 만지며 발자국 소리도 없는 저녁이 다녀갔음을
찔레꽃 필 때 다녀가고 도라지꽃 필 때 다녀간 저녁이 싸리꽃 필 때도 다녀가고 오동꽃 필 때도 다녀갔음을,
옛날에는 첫 치마 팔락이던 소녀 저녁이 이제는 할마시가 되어 다녀갔음을
내 다 안다,뻐꾸기 자주 울어 맘 없는 저도 울며 상춧잎에 보리밥 싸먹고 맨드라미 밟고 온 저녁이
대빗자루로 쓴 마당에 손님처럼 過客처럼 다녀갔음을,풀꽃의 신발마다 이슬 한잔 부어 놓고 다녀갔음을,
내일 다시 태어날 사람을 위해 들판 가득 달빛을 뿌려놓고 다녀갔음을
- 창비 . 2005년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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