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문학방 27

인연 / 신계옥

청보리밭을 스쳐가는연한 바람에온통 초록물이 들어바람이써 내려가는 일기마다살랑이는 잎새를 틔우는 날에흰 구름을 안고 가던바람에도솜사탕 같은 구름이소담스레 묻어난다면구름 닮은 꽃송이들이몽실몽실 피어나뽀얀 꽃향으로초록 바람을 쓰다듬을 테지누군가 나의 빛깔로물들어 가고내 마음도 그의 색을 따라물드는 것은소복소복 꽃송이 피우는 것은그것은 꽃봄그것은 사랑

손님 문학방 2025.05.17

오리(五里) / 우대식

오리(五里)만 더 걸으면 복사꽃 필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이 있고, 한 오리만 더 가면 술누룩 박꽃처럼 피던 향(香)이 박힌 성황당나무 등걸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오리, 봄이 거기 서 있을 것이다 오리만 가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하나 있고 햇살에 겨운 종다리도 두메 위에 앉았고 오리만 가면 오리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 ..

손님 문학방 2025.05.07

그리움 / 박경리

그리움은          가지 끝에 돋아난          사월의 새순.          그리움은          여름밤 가로수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움은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우수의 나그네.          흙 털고 일어나서          흐린 눈동자 구름 보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그네의 뒷모습.

손님 문학방 2025.04.02

행복 / 용혜원

나는 나무입니다                      웬일인지                      잘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들풀들과 새들과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수 있습니다

손님 문학방 2025.03.13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손님 문학방 2025.03.03

봄비 /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손님 문학방 202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