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플래닛 이동방(2007~2009) 3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영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걸으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며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2008.12.29

꽃이름 외우듯이 /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리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 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 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나르는 향기가 되자 1.4.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