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 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손님 문학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르는 내 눈물은 / 하이네 (0) | 2024.01.07 |
---|---|
여행에의 초대 / 김승희 (2) | 2023.12.08 |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2) | 2023.11.01 |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 유 하 (2) | 2023.09.16 |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2) | 202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