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조용하다.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뿌리의 정적 쪽으로
마음을 눕히고 풀은 조용하다. 바람은
흐린 하늘을 쓴 소주처럼 휘저으며
벌판을 들끓는 아픔으로 흔들며
온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것과
흔들며 지나가는 것 사이의
긴장은 고조된다. 시간은
어디론가 숨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바람은 오고
잠시 풀은 눕고,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의
풀은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눕히지만
끝내 바람은 흙 속에 숨은
풀의 흰 뿌리를 흔들지 못한다. 종일을
빈 벌판은 푸른 모발을 날리며
엎드려 있고 종일을 빈 벌판은
통곡을 하며 엎드려 있고
또 다시 바람은 불어오고
풀은 잠시 눕고 다시 풀은
일어서며 풀은 조용하다
'손님 문학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들레 / 이윤학 (0) | 2024.06.22 |
---|---|
적중的中- 사진 전시장에서 / 손남주 (0) | 2024.06.02 |
어머니 / 김종상 (0) | 2024.05.10 |
엄마와 할머니와 마누라와 딸은 / 이민호 (0) | 2024.04.30 |
별을 보며 / 이해인 (2) | 2024.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