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문학방

나무의 경지 / 정병근

권진희 2024. 8. 1. 11:27

          그래도 그냥 서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누구에겐가 가서 상처를 만들기 싫었다
          아무에게도 가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상관하지 않으면서
          혼자만의 생을 죽도록 살고 싶었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하루의 처음과 끝을 빽빽이 채우는
          나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그게 한계다 치명적인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를 가진 나무는 아름답다

          까마득한 세월을,
          길들여지지 않고 설득당하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서 있는 그 한 가지로
          마침내 가지 않고도 누군가를 오게 하는
          한 경지에 이르렀다

          많은, 움직이는, 지친 생명들이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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