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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m tree(야자나무) 놀 / 권의진

저물녘 맞아 야자나무 뒤로 일몰이 펼쳐집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떠나가는 길의 노을은 때론 환상의 붉은 가슴으로 어느 날은 어메이징 하기도 합니다 타는 노을아 너도 내 마음을 알았나 보다 이제와 돌아보니 인생은 타는 노을이었다 높다란 야자수 이파리 뒤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로 마무리 지는 서녘 푸른 열매, 고고한 장미 부여 안고 태우며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청명한 새벽 새 아침 밝아 오고 부챗살 퍼지는 포기 않는 낯선 새 하루 숨이 차는 멀리와 높이 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로 새 열매 맺는 따스한 삶의 새 희망 저마다, 한송이 아름다운 고귀한 생의 꽃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영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걸으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며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2008.12.29

梅梢明月 매초명월 매화 가지 끝의 밝은 달 / 李珥 이이 1536~1584

梅花本瑩然 (매화본영연)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映月疑成水 (영월의성수)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霜雪助素艶 (상설조소염)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 淸寒徹人髓 (청한철인수) 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對此洗靈臺 (대차세령대)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 (금소무점재) 오늘밤엔 한 점의 찌꺼기 없네 사진 . 권의진

한시 모음방 2024.02.01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손님 문학방 2024.01.22

말굽처럼 굽은 공간을 타고 / 최희준

절대온도 2.7 K* 암흑의 공간 창조의 비밀 속에 만들어진 인연의 끈으로 나와 당신을 묶는 순간 나의 눈빛은 우주 바다에 떠밀려 말굽처럼 굽은 공간을 타고 은하수를 돌아온다 세상 길을 다 거쳐온 이 불꽃이 당신 눈동자에 또렷하게 나의 영상을 새긴다 그 영상이 아침마다 우주의 지평선을 오르며 따뜻한 빛 속으로 나와 당신을 안고 간다 우리 몸의 원자들이 세상을 하직하고 쌍을 이루어 암흑 공간을 가는 날에는 또 다른 인연을 계획하고 있을 게다. *우주공간의 온도는 2.7 K (영하271.3도)이다 2.29.2008

미주 문학방 2024.01.12